홍범황극내편 합편 천문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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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범 작성일19-05-02 00:27 조회1,378회 댓글0건본문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
사마천司馬遷이 편찬한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는 하늘을 오궁으로 나누고 북극을 중심으로 하여 중궁이라 이름 하여 천제의 중앙조정으로 상정하고 동・남・서・북의 4궁은 사시와 대응하여 천제가 천하를 순행巡行하는 행궁이 되어 춘분과 추분, 하지와 동지를 맡은 성관星官이 이를 관장하는 것으로 보았다. 천관天官은 별자리를 달리 칭한 이름으로 별의 이치에 따라 지상의 인사가 다스려져야 한다는 사마천의 가치관이 반영된 저작이다. 한나라 때의 태사太史는 기록을 맡은 관직이기 때문에 사마천의 이러한 저작은 예로부터 전하여 오던 것을 집대성하여 정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는 “공자가 죽은 지 500년이 되었으니 누군가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역전(易傳)」을 바로잡고 「춘추(春秋)」의 정신을 계승하여 시詩・서書・예禮・악樂의 정신을 찾는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는 사마씨 집안의 내력이 전한다.(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는 2013. 5. 1. 김영수의 번역문이다.)
옛날 전욱(顓頊)은 남정(南正) 중(重)에게 천문에 관한 일을, 북정(北正) 여(黎)에게는 지리에 관한 일을 맡겼다.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시대에 와서도 중과 여의 후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그 일을 맡겨 하․상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중과 여 가문은 대대로 천문과 지리에 관한 일을 맡아왔다. 주대에 이르러 정백(程伯)에 봉해졌던 휴보(休甫) 또한 여의 후손이었다. 그러다가 주 선왕(宣王) 때에 와서 여의 후손들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 군사 일을 담당하는 사마(司馬)씨가 되었다. 그 뒤 사마씨는 대대로 주나라의 역사를 주관하게 되었다. 주나라의 혜왕(惠王)에서 양왕(襄王)에 이르는 기간에 사마씨는 주나라를 떠나 진(晉)나라로 갔다. 진나라의 중군(中軍) 수회(隨會)가 진(秦)나라로 달아났을 때 사마씨는 소량(少梁)으로 들어가 살았다. 사마씨가 주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간 뒤로 위․조․진나라 등지로 흩어져 살았다. 위나라로 간 일족 중에는 중산(中山)의 재상을 지낸 사마희가 있었고, 조나라로 간 일족 중에는 검술 이론을 전수하여 이름을 날린 사람도 있었는데 괴외(蒯聵)가 그 후손이다. 진나라로 간 사마조(司馬錯)는 진 혜왕 앞에서 장의와 논쟁을 벌였다. 혜왕은 사마조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촉을 공격하게 하여 사마조는 촉의 땅을 빼앗았고 그곳의 군수로 임명되었다. 사마조의 손자 사마근(司馬靳)은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를 섬겼다. 이 무렵 소량은 이름을 하양(夏陽)으로 바꾸었다. 사마근과 무안군 백기는 장평(長平)의 조나라 군대를 파묻고 돌아왔지만 두 사람 모두 두우(杜郵)에서 죽임을 당했고, 사마근은 화지(華池)에 매장되었다. 사마근의 손자 사마창(司馬昌)은 진나라의 주철관을 지냈는데, 당시가 진시황 때였다. 괴외의 현손 사마앙(司馬卬)은 무신군(武信君)의 부장이 되어 조가(朝歌)를 공략했다. 제후들이 서로 왕을 자처하고 나섰을 때 사마앙은 은(殷)나라의 왕이 되었다. 한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하자 사마앙은 한나라에 귀순했고, 그 땅은 하내군(河內郡)이 되었다. 사마창은 무택(無澤)을 낳았고, 무택은 한나라의 시장을 지냈다. 무택이 희를 낳았고, 희는 오대부를 지냈다. 죽은 뒤 모두 고문(高門)에 안장되었다. 사마희(司馬喜)는 사마담(司馬談)을 낳았는데, 담은 태사공(太史公)이 되었다.
내 아버지 태사공은 당도(唐都)에게서 천문학을 배웠고, 양하(楊何)로부터 역易을 전수받았으며, 황자(黃子)로부터 도가의 이론을 익혔다. 태사공은 건원에서 원봉에 이르는 기간에 벼슬을 했다. 그는 학자들이 각파 학설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하고 그릇된 것만 배우고 있는 것을 걱정하여 6가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역대전(易大傳)」에 “천하는 하나인데 생각은 각양각색이고, 귀착점은 같은데 가는 길은 다 다르다.”고 했듯이 음양가(陰陽家)·유가(儒家)·묵가(墨家)·명가(名家)·법가(法家)·도덕가(道德家)들은 다 같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일에 힘을 쓰지만 그들이 따르는 논리는 길이 달라 이해가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일찍이 음양가의 학술을 가만히 살펴본 적이 있는데, 길흉의 징조에 너무 집착하여 금하고 피하라는 것이 많기 때문에 사람을 구속하고 겁을 먹게 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사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일해야 한다는 것은 놓칠 수 없는 점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는 상고시대의 황제黃帝로부터 한나라 무제 태시太始 2년(B·C 95)까지에 이르는 대략 2,600년간의 아시아 역사를 포괄하는 통사이다. 「사기」는 전체 구성이 130편, 52만 6500자인데, 본기(本紀)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이다. 그 중 팔서(八書)는 예서(禮書)・악서(樂書)・율서(律書)・역서(曆書)・천관서(天官書)・봉선서(封禪書)・하거서(河渠書)・평준서(平准書) 등으로 두 편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이 중 「천관서」는 천문에 대한 저작으로 반고의 「한서・율력지」와 더불어 율律・력曆・천문天文의 원전原典이라 칭할 수 있다.
■ 中宮天極星, 其一明者, 太一常居也;旁三星三公, 或曰子屬. 後句四星, 末大星正妃, 餘三星後宮之屬也. 環之匡衛十二星, 藩臣. 皆曰紫宮.
중궁中宮은 천극성天極星이니, 그 중 밝은 별 하나는 태일太一이 항상 거처하는 곳이고, 그 옆의 세별은 삼공三公인데, 어떤 사람은 천제天帝의 아들들이라고도 한다. 태일 뒤로는 네별이 굽어져 있는데, 끝의 큰 별은 천제의 정비正妃이고 나머지 세별은 후궁後宮의 무리이다. 이들을 둘러싸 호위한 열두 별은 변방을 지키는 제후들이다. 이들 모두를 자미원紫微垣라고 한다.
中宮 : 고대 역법(曆法)에서 주천(周天) 삼십도가 1궁이 되니, 주천 360도의 12분의 1이 1궁이다. 「색은(索隱)」에서 「춘추원명포」를 인용하여 “관이라 함은 펼침을 말한 것이니, 기가 펼쳐져서 정을 세우니 신의 담장이 된다.”고 했고, 또 「춘추위(春秋緯)・문요구(文耀鉤)」에 “중궁대제는 그 정이 북극성이니, 원기를 지니고 내며 정을 한결같이 흘려서 낳는다.”(姚氏案 : 春秋元命包云「官之爲言宣也, 宣氣立精爲神垣」. 又文耀鉤曰「中宮大帝, 其精北極星. 含元出氣, 流精生一也」.)고 했다.
天極星 : 북극성을 말한다.(索隱案:爾雅「北極謂之北辰」) 「춘추합성도」에 “북신은 다섯별이 있는데, 자미원의 가운데에 있다.”(春秋合誠圖云「北辰, 其星五, 在紫微中」)고 했고, 진(晋〕양천(楊泉)의 「물리론(物理論)」에 이르기를 “북극은 하늘의 가운데이니, 양기의 북극이다. 극남은 태양이 되니, 극북은 태음이 된다, 일월오성이 태음으로 가면 빛이 없고, 태양으로 가면 비출 수 있기 때문에 어둡고 밝으며 춥고 더움의 극한이 된다.”(北極, 天之中, 陽氣之北極也. 極南爲太陽, 極北爲太陰. 日月五星行太陰則無光, 行太陽則能照, 故爲昏明寒暑之限極也.)고 했다.
太一 : 「춘추합성도」에 “자미원은 대제의 집이니, 태일의 정혼이 모인 곳이다.”(索隱案 : 春秋合誠圖云「紫微, 大帝室, 太一之精也」)라고 했고, 「정의(正義)」에서는 “태일(泰一)은 천제의 별명이다.”(泰一, 天帝之別名也.)라고 했는데, 유백장(劉伯莊)은 “태일은 천신에서 가장 높고 귀한 분이다.”(泰一, 天神之最尊貴者也.)라고 했다. 「춘추합성도(春秋合誠圖)」의 작자는 전하지 않고 다만 삼국시대 위(魏)의 송균(宋均)이 주(注)를 낸 것으로 미루어 한대(漢代)에 이미 있었던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사마천이 「사기(史記)」를 저술한 것보다 앞서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선서(封禪書)」에서도 “中宮天極星, 其一明者, 太一常居也”라고 하여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한서(漢書)・천문지(天文志)」에서는 “泰一之常居也”라 하여 태일(太一)을 태일(泰一)로 표기하였고, 「한서(漢書)・교사지(郊祀志)」에서는 “천신으로 귀하신 분이 태일이다. 태일의 보좌는 오제라 한다. 옛날에 천자는 매년 봄, 가을에 동남쪽 교외에서 태일에 제사지냈다.”(天神,貴者太一. 太一佐曰五帝. 古者天子以春秋祭太一東南郊)고 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태미원은 태일의 정원이고 자미궁은 태일의 거소이다. 태일은 하늘의 가장 높은 신이다.”(太微者, 太一之庭 ; 紫宮者,太一之居. 說者曰 : 太一, 天之尊神)라고 했다. 교사(郊祀)는 하늘과 땅에 지내는 교제(郊祭)로 옛날의 임금이 동지(冬至) 때는 남쪽 교외에 나가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하지(夏至) 때는 북쪽 교외에 나가서 땅에 제사를 지냈다. 「봉선서」에 따르면, 옛날의 천자는 삼 년에 한 번 씩 태뢰(太牢-소, 양, 돼지를 함께 받침)를 갖추어 천일신, 지일신, 태일신의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古者天子三年壹用太牢祠神三一:天一、地一、太一) 또 옛날의 천자는 항상 봄에 재앙을 쫓는 제사를 지냈는데, 황제(黃帝)에게 제사 지낼 때마다 효조(梟鳥), 파경(破鏡)을 사용하고, 명양신(冥羊神)에게는 양을, 마행신(馬行神)에게는 청목마(靑牡馬) 한 필을, 태일신(太一神), 택산군지장신(澤山君地長神)에게는 소를, 무이군(武夷君)에게는 마른 어물(魚物)을, 음양사자신(陰陽使者神)에게는 소 한 마리를 사용했다.”고도 한다. 한나라 때의 봉선의식은 3층의 태일단(太一壇)을 설치하고 그 밑에 오제단(五帝壇)을 각 방위별로 설치하였다. ‘5제(五帝)는 태일신의 보좌로, 태일신위(太一神位)를 세워 천자가 친히 교사를 거행해야 하는(五帝, 太一之佐也, 宜立太一而上親郊之) 것이었다. 「봉선서」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보정(寶鼎)을 제조한 때가 동지라고 한다. 공손경(公孫卿)이 얻은 목간(木簡)에는 “황제(黃帝)께서 원구(宛朐)에서 보정을 얻으신 후에 귀유구(鬼臾區)에게 이 일을 물었더니, 귀유구가 ‘황제(黃帝)께서 보정과 신책(神策)을 얻으셨을 때가 그해 기유(己酉) 초하룻날 아침이 동지에 해당되는 때이며, 이때는 바로 천도운행의 계통과 부합해 계속 순환하는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황제(黃帝)께서는 일월삭망에 의거해 매 20년 간격으로 초하룻날 아침에 동지가 순환된다는 것을 추정하셨으며, 20여 차례를 합산하니 380년 만에 황제(黃帝)께서는 신선이 되어 등천하셨다.(黃帝得寶鼎宛朐, 問於鬼臾區. 鬼臾區對曰:「(黃)帝得寶鼎神策, 是歲己酉朔旦冬至, 得天之紀, 終而復始.」 於是黃帝迎日推策, 後率二十歲復朔旦冬至, 凡二十推, 三百八十年, 黃帝僊登于天)”라고 쓰여 있었다. 공손경은 신공(申功)이라는 사람에게서 목간을 받았는데, 신공(申功)은 제나라 사람으로 신선 안기생과 왕래했고, 황제(黃帝)의 말을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다른 글은 남기지 않고 정서(鼎書)를 남겨 놓았다고 한다.
사마천이 「사기」에서 효무제(孝武帝) 때의 교사제(郊祀祭)에 대한 기사에서 기록한 귀유구(鬼臾區)는 황제(黃帝) 시대의 여섯 천사(天師) 중의 하나이다. 기백(岐伯)을 비롯하여 귀유구(鬼臾區), 백고(伯高), 소사(少師), 소유(少兪), 뇌공(雷公) 등이 황제(黃帝)의 천사(天師)들이었다. 황제(黃帝)가 등천한 곳을 한문(寒門)이라 하고 또 곡구(谷口)라고 하였는데 곡(谷)은 고을, 마을, 성의 뜻이다. 한문(寒門)에 대한 기록은 「초사(楚辭)·원유(遠游)」에 처음 보이는데(舒幷節以馳騖兮, 逴絶垠乎寒門), 왕일(王逸)은 “북극의 문”(注 : 寒門, 北極之門也.)이라 했고, 「회남자(淮南子)·지형훈(墬形訓)」에서는 “북방은 북극의 산이라 하고 한문이라고 한다.”(北方曰北極之山, 曰寒門)고 했다.
三公 : 「정의(正義)」에서 “삼공의 세별은 북두의 자루 동쪽에 있는데, 또 괴성(魁星)의 서쪽에 있는 것도 아울러서 대위・사도・사공의 상이 되어, 변화를 주관하고 음양을 내며, 기밀업무를 보좌하는 주로 하고, 점을 쳐서 옮겨가는 것은 불길하고 항상 거주하면 편안하니, 금과 화가 아울러 지켜서 허물이 없게 된다.”(三公三星在北斗杓東, 又三公三星在北斗魁西, 並爲太尉、司徒、司空之象, 主變出陰陽, 主佐機務. 占以徙爲不吉, 居常則安, 金、火守之並爲咎也)고 했다.
后妃四星 : 사마정(司馬貞)은 “북신의 극은 횡으로 있고, 후비의 네별은 종으로 있는데, 끝의 별이 대비의 별로 밝다.”(索隱案:援神契云「辰極橫, 后妃四星從, 端大妃光明.」)고 했고, 또 “성경의 뒤로 구부린 네별은 사보가 되는데, 구진 육성은 육궁이 되고, 또한 육진이 되니, 이와는 다르다.”(又案:星經以後句四星名爲四輔, 其句陳六星爲六宮, 亦主六軍, 與此不同也.)고 했다.
紫宮 : 사마정(司馬貞)은 “자궁은 천신이 운동하여 음양이 열고 닫음이 모두 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십이군이 되는 것이 중궁의 바깥에 각기 자리를 정한 것을 총칭하여 자궁이라 한다.”(索隱案:元命包曰「紫之言此也, 宮之言中也, 言天神運動, 陰陽開閉, 皆在此中也」. 宋均又以爲十二軍, 中外位各定, 總謂之紫宮也.)라고 했다.
■ 前列直斗口三星, 隨北端兌, 若見若不, 曰陰德, 或曰天一. 紫宮左三星曰天槍, 右五星曰天棓, 後六星絶漢抵營室, 曰閣道.
앞으로 길게 늘어서서 북두성의 두병斗柄을 마주하는 세별이 북쪽을 향하여 끝이 날카롭고 보일 듯 말듯 한데, 음덕좌陰德座 또는 천일좌天一座라고도 한다. 자미원의 왼쪽 세별은 천창좌天槍座라 하고, 오른쪽 다섯별은 천봉좌天棓座라고 하며, 뒤의 여섯별은 은하수를 가로질러 실수室宿에까지 이르는데 각도좌閣道座라고 한다.
斗口 : 북두칠성의 제5에서 제7까지의 세별인 형성(衡星)・개양성(開陽星)・요광성(搖光星)으로 국자의 자루가 되는 부분이므로 두병(斗柄)이라고 한다. 사마정(司馬貞)은 ‘直’의 음은 치(値)이고 마주한다(當)는 뜻이라 했다.(索隱直, 劉氏云如字, 直, 當也. 又音値也.) 단태(端兌)는 끝이 날카롭다는 뜻이므로(索隱隋斗端兌. 隋音湯果反. 劉氏云「斗, 一作北」. 案:漢書天文志作「北」. 端作「耑」. 兌作「銳」. 銳謂星形尖銳也.) 북쪽으로 타원형으로 가늘게 늘어서 있는 별이다.
陰德 : 음덕의 두별은 자미궁 안에 있는데, 상서의 서쪽에서 덕을 베푸는 일을 주관하기 때문에 음덕을 베푸는 것을 기리는 역할을 하는데, 중궁의 여주(女主)의 상이므로 별이 동요하여 궁궐안의 뜰이 붉게 되면, 귀빈과 내첩이 악해진다고 했다.(正義星經云 : 「陰德二星在紫微宮內, 尙書西, 主施德惠者, 故贊陰德遺惠, 周急賑撫. 占以不明爲宜;明, 新君踐極也.」 又云 : 「陰德星, 中宮女主之象. 星動搖, 釁起宮掖, 貴嬪內妾惡之.」)
天一 : 천일성은 창합문 바깥을 지키는 천제의 신으로 전투를 주관하여 길흉을 알려주는데, 밝게 빛나면 음양이 조화롭고 만물이 이루어져 사람이 길하고, 태일성은 천일의 남쪽에 있는데 또한 천제의 신으로 16신을 맡아서 주관하며, 풍우・수한・병혁・기근・질병 등을 알 수 있는 별이다. 甘公과 石申의 「성경(星經)」에서는 “천일, 태일의 두별은 왕이 되는 자가 즉위하는 것을 주관한다.”고 했다.(正義天一一星, 疆閶闔外, 天帝之神, 主戰鬪, 知人吉凶. 明而有光, 則陰陽和, 萬物成, 人主吉;不然, 反是. 太一一星次天一南, 亦天帝之神, 主使十六神, 知風雨水旱兵革饑饉疾疫. 占以不明及移爲災也. 星經云:「天一太一二星主王者卽位, 令諸立赤子而傳國位者. 星不欲微;微則廢立不當其次, 宗廟不享食矣.」)
天槍・天棓 : 천창과 천봉은 두표의 좌우에 있는 별로 창과 몽둥이에 해당하므로 별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나라에 전란이 있다.
閣道 : 각도는 자미성 뒤에 있는 여섯 별로 북두성을 보필하는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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